
우리의 취향은 은연중에 사회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개인의 취향은 대중에 대한 저항으로 쟁취될 수 있다.
부르디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본이 한 사람의 취향을 형성한다고 한다. 한정판 와인을 부담 없이<마시고 특별한 디자인은 없지 만 고가의 옷을 추구하는 젊은 CTO의 취향은 그 사람이 단순히 매우 운이좋고 열심히 밤샘 코딩하며, 쌓을 노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자본이 아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학교를 나와 얻은 명문대 학벌은 문화 자본이다. 이 학벌을 통해 동문의 벤처투자자와 연결되는 인맥이 사회자본이 된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적은 연봉을 버틸 수 있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판교의 아파트는 경제 자본이 되어 그를 이루는 취향이 되는 것이다. >>> 세 자본이 취향을 지탱한다.
천안이라는 사회에서 컴퓨터를 선물 받고 영 문학을 전공해 전자책 MD와 콘텐츠 사업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주 자랑스럽거나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주입된 사회적 성공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기준이 자리 잡고 있어 만족의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소중한 경험과 순간순간의 선택이 지금까지 없었던 특별 한 개인을 만들어 준 것은 틀림없다. 이처럼 과거의 나를 선명히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자리를, 더 소중하고 귀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사랑해 줄 준비
또한 대중문화보다 다양한 소수 문화를 받아 들인다. 이들은 무턱대고"주류 문화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명확하며 사회적 오류가 있는 문화를 방관하지 않는다. 힙스터는 미디어에서 자신들을 규정짓는 신조어를 싫어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기득권이 다수를 약 자로 취급하여 그들의 권리와 권한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영화나 음악 그리고 미술을 즐기는 이유는 자 신만의 특별한 안목과 가치를 키울 수 있기 때 문이다. 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취향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사람은 표준 화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우선시한다.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과거 힙스터들은 단순히 놀림의 대상이었다 이상한 패션을 추구하며 이해할 수 없는 취향 을 가진 젊은이들로 여겨졌다. 이들이 상대적 으로 쉽게 비난받는 이유는 기성세대보다 경제 적으로 가난해 스스로 대변할 권력이 없어서이 고, 미래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젊은 세대 특 유의 불완전함이 여과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 다.
남들과 다르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다. 때로는 애처롭고 추할 때도 있다. 질문을 바뀌보자, 남들과 같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다운가? 모두 가 평균적으로 좋아 보이는 얼굴로 성형하고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모두가 인정하는 학 벌로 위장해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삶은 어설프고 불완전하지만 언젠가 고유의 개성 이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 그때는 아마도 자신 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정신과 옷과 취향으로 무 장되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설픈 시기 는 필요하다. 취향을 갖느냐 주어진 취향에 머 무느냐의 차이는 취향을 얻고자 하는 사람의 진정성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 우리는 끊임없 이 새로운 것과 오래된 가치를 더듬어야 한다 스스로 흐르지 않으면 대중이라는 이름 아래 고이게 된다. 나는 지금의 힙스터들이 성공의 기준과 행복의 척도를 모두 뒤흔들어주기를 바 란다. 저항은 반대편에 힘을 심는 것이다. 힘을 실 지 않으면 반대의 힘에 나의 취향이 눌리고 만 다. 취향은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게임이다.